작성자 이승원  작성일 2006.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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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핵항체가 양성이래요”.
“항핵항체가 양성이래요”.

어느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내뱉는 이야기다.
감추려 하지만 역력하게 불안한 표정이 아마도 자기 병이 뭔지 이미 진단을 내리고 온 것 같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하여 많은 환자들이 정보를 접하면서 지레짐작 병을 자가진단하고 겁부터 먹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항핵항체가 양성인 상태에서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다보면 아무래도 겁부터 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인터넷에서는 루푸스에 대하여 무섭고 극단적인 내용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현실에서는 그렇게 극단적인 병세를 갖고 있는 환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드물게 관찰된다.
더구나, 루푸스는 항핵항체 한 개만을 가지고 진단을 내리는 질환은 결코 아니기 떄문에, 미리 자가진단을 내려 불필요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암이나, 감염질환들은 병리조직을 확인하거나 또는 병균을 검출해서 진단을 확실하게 내린다. 모 아니면 도인 셈이다.
그러나 루푸스를 포함한 많은 류마티스 질환들은 단지 혈액검사만을 의존하여 진단을 내릴
수도 없고 또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 이런 사실과 달리 많은 일반인들은 단순히 혈액검사
자체로 많은 류마티스 질환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물론 잘못된
생각이다.
루푸스는 항핵항체 한 개 뿐만 아니라 11가지 진단기중들중 최소한 4개 이상의 진단기준에 부합하여야만 루푸스라는 진단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4개이상 해당된다고 해도 정확도는 100%가 아닌 96%에 불과하다.

하얀색과 검정색 사이에 회색지대가 있듯이 임상적으로는 진단기준들중 2~3개만 해당하지만, 경험상 루푸스가 의심되어 치료를 하는 경우도 있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부족한 경우이다. 이러한 환자들은 오랜기간 추적관찰을 해보면 진단기준에 부합하는 루푸스로 진행하는 경우를 관찰할 수 있다. 물론 별 문제 없이 잘 지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과학을 하는 사람은 흔히 삶에서 융통성과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진리를 연구해서일까? 과학적인 진리를 생각해보자. 대부분 예외란 존재하지 않는다. 3+4는 항상 7이다. 빛의 속도는 항상 초속 30만 킬로미터, 사과는 항상 중력의 힘에 의해서 지구로 떨어지며 항상 불변이다.

그러나 과학을 하는 의사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경직된 자연의 법칙보다는 항상 예외가 존재하는 임상현장 속에서 산다. 의학은 과학이지만, 같은 질환임에도 환자 개개인에 따라 서로 다른 질병경과와 치료반응을 보여준다. 공식화된 교과서의 의학지식이 현장에서 맞지 않는 경우를 관찰하면서 의사들은 인간의 한계와 동시에 인간의 무한한 잠재적 능력을 동시에 체험한다.
사실 TV 드라마속에서 주인공에게 1년 또는 9개월의 딱 정해진 기간의 사형선고를 내리는 의사를 보면, 정말 드라마 속의 그 의사가 존경스러워지기까지 한다. 실제 임상에선 아무리 말기의 질환이라고 하더라도, 환자의 의지에 따라 생존기간은 얼마든지 변하기에 이러한 섣부른 사형선고를 실제 병원에서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그래서 과학을 하는 사람들 중 아마도 신의 존재를 가장 믿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어떤 시한부 환자들은 일부러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하여 의사들이 남은 자신의 여생에 대해 모른다는 식으로 언급을 회피한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같은 질환이라도 개개인 환자의 의지와 삶에 대한 애착정도에 따라 너무나도 질병의 예후가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루푸스는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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